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문단 편집) ==== 브레즈네프의 국적 및 민족성 ==== 브레즈네프가 스스로 우크라이나인을 자칭한 기록은 있지만, 이것은 민족적 함의를 갖지 않았다. 혈통적으로 러시아인이라고 해도, 그는 엄연히 우크라이나에서 나고 자랐다. 또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의 통혼과 이주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흔한 일이라서 이중 정체성을 가지는 일도 많았다. >브레즈네프는 1906년,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직업을 찾아 러시아 제국 남부, 이른바 '노보 러시아'(지금의 우크라이나 남동부)로 이주한 쿠르스크 지역 출신의 전직 농민인 산업 노동자 가족에게서 태어났다. 초기 문서에서 브레즈네프는 자신을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칭했지만, '''나중에 모스크바로 이주한 후 신분을 '러시아인'으로 바꿨다. 이것은 느슨한 '러시아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신중한 선택이기도 했다. '''1920년대에는 '우크라이나인'이 볼셰비키 국가 분류 체계에서 선호도를 누렸지만 1930년대 이후에는 균형이 '러시아인'으로 바뀌었다.''' 소련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된 '신러시아'(노보 로시야)의 영토는 브레즈네프의 작은 고향이었다.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전형적으로 쾌활하고 사교적인 '남부 러시아인'으로 보았다. 또한 문화적으로 브레즈네프는 러시아 농민과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다'''. 그는 농민을 돌보고 농민 가족의 가치를 보존했다. >Brezhnev was born in 1906 in the Russian empire. He came from a family of industrial workers, former peasants from the Kursk region who moved in search of jobs to the southern region of the Russian empire, so-called ‘NewRussia’ (now Ukraine). In his early documents Brezhnev put himself down as ‘Ukrainian’, but later, after he moved to Moscow he changed his identity to ‘Russian’. This was natural for people with a loose ‘Russian’ identity, but it was also a prudent choice: in the 1920s ‘Ukrainians’ enjoyed preferences in the Bolshevik national taxonomy, while after the 1930s the balance became reversed in favour of ‘Russians’. The territory of ‘New Russia’ (Novorossiia) that became part of Soviet Ukraine was Brezhnev’s small homeland; his contemporaries viewed his character as stereotypically ‘southern Russian’ – cheerful and gregarious. Also culturally, Brezhnev never fully separated himself from Russian peasantry. He cared about peasants and preserved peasant family values. >---- >Zubok, Vladislav. "‘Do not think I am soft…’: Leonid Brezhnev." Mental Maps in the Era of Détente and the End of the Cold War 1968–91. Palgrave Macmillan, London, 2015. 7 [[https://link.springer.com/chapter/10.1057/9781137500960_2]] * В «Приписной книжке допризывника Л. И. Брежнева» от 5.10.1928 г. в пункте 6 «Национальность и родной язык» записано — «Великорос». ГАСО. Ф. Р-160. Оп. 1л. Д. 103. Л. 6. И в учётной карте члена ВКП(б) от 18.11.1929 г. тоже в пункте 4. «Народность» записано «Великорос», а в пункте 5. «Родной язык» — «Украинский» зачёркнут, а поверх написано «Русский». ЦДООСО. Ф. 4. Оп. 17. Д. 22. Л. 256. Приписна[[https://ru.wikipedia.org/wiki/%D0%91%D1%80%D0%B5%D0%B6%D0%BD%D0%B5%D0%B2,_%D0%9B%D0%B5%D0%BE%D0%BD%D0%B8%D0%B4_%D0%98%D0%BB%D1%8C%D0%B8%D1%87#cite_note-28]] * 브레즈네프가 '''1928년 10월 5일에 [[대러시아]]인으로 기록한 자료'''[[https://liders.rusarchives.ru/brezhnev/docs/pripisnaya-knizhka-doprizyvnika-li-brezhneva-5-oktyabrya-1928-g.html|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архив Свердловской области Ф. Р-160. Оп. 1л. Д. 103. Л. 6.]] * 브레즈네프가 '''1929년 11월 18일에 [[대러시아]]인으로 기록한 자료'''[[https://liders.rusarchives.ru/brezhnev/docs/uchetnaya-kartochka-chlena-vkpb-brezhneva-leonida-ilicha.html|Центр документации общественных организаций Свердловской области Ф. 4. Оп. 17. Д. 22. Л. 256–256об.]] 브레즈네프는 1920년대에는 일관되게 본인을 '''[[대러시아]]인(великорос)'''으로 기록했지만 이후 지역의 이동에 따라 1940년대에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자칭했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rezhnev_LI_Pasport_1947.jpg?uselang=ru|1947]],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ru/a/ac/Brezhnev_LI_ListKadr_1942.jpg|1942]],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b/Brezhnev_LI_OrKrZn_NagrList_1942.jpg?uselang=ru|1942]] 이 와중에 러시아인으로 자칭하는 기록도 존재한다.[[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Brezhnev_LI_OrOtVo_NagrList_1943.jpg?uselang=en|1943]] 브레즈네프는 '''일관되게 대러시아인으로 자칭했었지만''' 나중엔 이동하면서 우크라이나인으로 자칭한 것이었고, 그 와중에도 러시아인으로 자칭하는 기록을 남긴 것이다. 1970년대에 쓴 자서전에서는 본인이 러시아인임을 인정했다. >따라서 '''민족(혹은 국적)에 따라 나는 러시아인이며''' 출신은 프롤레타리아이며 유전 야금 학자다. 그것이 내 가계도에 대해 알려진 전부다. >Таким образом, по национальности я русский, по происхождению — коренной пролетарий, потомственный металлург. Вот и все, что известно о моей родословной. > >[[https://archive.org/details/B-001-017-846/page/n7/mode/2up|Леонид Ильич Брежнев, "Жизнь по заводскому гудку" (Москва: Издательство политиче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1981), с.7]] 여기서 '''национальности는 국적, 국민성으로도 번역된다.''' >1.민족 >2.민족소속 >3.'''국민성''', 민족성 >출처 :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새노한사전 >민족(民族); '''국적, 국민성''', 민족성 >출처 : 도서출판 문예림 최신 러시아어-한국어사전 >국적 >'''национа́льность''';национа́льная принадле́жность; по́дданство; гражда́нство >출처 :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새한노사전 >국적 >1.гражданство >2.'''национальность''' (судна) >3.национальный характер;национальные черты >출처 : 국립국어원 한국어-러시아어 학습사전(KORU) >'''국민성''' >национальность >출처 : 국립국어원 한국어-러시아어 학습사전(KORU) [[https://dict.naver.com/rukodict/#/main|검색출처]] 상단에 인용된 Zubok, Vladislav. "‘Do not think I am soft…’: Leonid Brezhnev."란 논문에 사용된 '''national taxonomy도 국가 분류로 번역된다.''' 그리고 '''소련에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실존했다.''' 공문서에 기재된 것만으로는 국적이 기재된건지 민족을 기재한 건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브레즈네프는 1920년대 시절부터 문서에 일관적으로 '[[대러시아]]인'으로 기재했었다. 당시 소련은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대러시아]]/[[소러시아]]라는 식으로 분류하지 않았으므로, 국적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브레즈네프에게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사실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비밀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러시아인 혈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인이라고 했을 뿐이며, 평소에 말하는 말투에서부터 우크라니아어 억양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에 당대 소련인들에게 브레즈네프가 우크라이나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 Мастер Петя мне ответил: > 마스터 페탸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길[* 1990년 해당 곡을 다른 앨범에 재수록했을 때는 시대에 맞춰 이 부분을 "[[고르바초프|마스터 미샤]]"라고 바꿨다.] > «Брэйк __зробили у__ США > "브레이크란 놈은 미국에서 만들어 낸 것이야"[* 여기서 "브레이크"는 [[브레이크 댄스]]를 의미하는데, 우리가 아는 화려한 퍼포먼스의 비보잉 댄스가 아닌 로봇처럼 어색하게 몸동작들 딱딱 끊어가며 추는 팬토마임 식 춤을 의미한다. 80년대 당시 소련에서 유행했다.] > Чтоб __ряденски__ классы у клети > "소비에트의 계층을" > Засадить на __уси__ года.» > "영원히 철창에 가두고자 만들어 낸 것이지" > ----- > [[데데테]], 컨베이어(Конвейер, 1987) [[https://www.youtube.com/watch?v=G_4ttjVP4M8&list=PLj0_J--B_sY5cJeVgVT9S3totTIA1iSO7&index=54|노래 영상 (한국어 자막)]] 소련 특유의 낮은 노동생산성과 경직된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인 데데테의 "컨베이어"에서 이런 점이 잘 드러난다. 해당 부분의 "마스터 페탸"는 브레즈네프의 비유로, 보컬 유리 셰프추크는 브레즈네프의 연설을 희화화하며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뒤섞인 '혼종' 가사를 사용하고 있다.[* 단순히 러시아어를 우크라이나어식으로 읽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우크라이나어 계열 단어 및 표현도 섞여 있다. 위 가사에서 밑줄 친 부분은 우크라이나어 단어 혹은 문장을 러시아어식으로 적은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